그리어 대표는 미국이 해외시장 접근과 국내 투자 유치를 위해 관세 부과와 무역협상을 혼합해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세계 무역 질서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 행정부가 WTO 집행 메커니즘과의 단절을 모색하고 있음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새로운 접근 방식은 무역 관료들의 낡은 경비원들이 선호하는 장기간의 분쟁 해결 절차보다는 협정의 이행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더 높은 관세율을 신속하게 다시 부과하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약속이 실행 가능하며 미국이 이를 집행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오락가락’ 불확실성 큰 트럼프 라운드 미국의 무역 전문지 인사이드유에스트레이드는 그리어 대표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분석하는 기사에서 여전히 ‘트럼프 라운드’가 내거는 여러 비전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기사에서는 “그리어 기고문은 향후 국제 무역에서 WTO의 역할을 경시하고 ‘수년간의 결실 없는 WTO 협상’과 최근 시장 접근 양보를 이끌어낸 트럼프 무역합의들을 비교했지만, 여기에는 인도네시아가 여러 환경 약속 중 하나로 ‘수산보조금에 관한 WTO 협정을 완전히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서면 프레임워크 조항과 같은 일부 WTO 약속이 여전히 포함돼있다”고 짚었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대부분의 거래에는 아직 공식적인 서면 조건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유사한 요구 사항을 적용하는 다른 협정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며 “오히려 발표는 양측이 협상한 내용에 대한 구두 설명, 백악관 팩트시트 및 프레임워크에 의존했으며 일반적으로 포괄적인 조건으로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약속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집행의 위협은 각 협정이 정확히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명확성이 부족하여 복잡해질 수 있다”며 “아직 결정되지 않은 세부 사항 외에도 백악관과 협상 파트너는 합의의 몇 가지 핵심 판자에 대해 모순된 견해를 표명했으며, 양측 모두 그러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인용할 수 있는 결정적인 텍스트가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무역합의에 대해 트럼프와 협상 대상국 지도자들의 말이 계속 달라지는 것이 예시로 꼽혔다. 15%의 관세율이 기존의 관세율에 추가된 것인지 고정된 것인지 말이 달라진 일본은 물론 유럽연합(EU) 지도자들도 합의 내용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와 다른 견해를 내비치고 있어 세부 사항의 이행이 어떻게 이뤄질지에 대해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를테면 백악관은 EU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미국에 6000억 달러를 투자하고 2028년까지 미국산 에너지 7500억 달러어치를 구매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EU 관리들은 그러한 조치의 이행 의지는 민간 부문에 달려 있고 EU는 이를 강제할 권한이 없음을 분명히 했으며 EU 대변인은 이를 엄격한 협약이 아닌 추정치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어 “한국, 상당한 투자 약속” 한편, 해당 기고문에서는 추가 협상이 이뤄진 미국의 주요 무역대상국으로서 한국에 대한 언급이 곳곳에 나타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미국은 한국에 25%의 상호관세를 15%로 내리는 대가로 막대한 투자 약속을 받았다며 자랑하고 있다. 그리어 대표는 “우리가 협상 중인 국가 대부분은 또한 중요한 공급망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 경제 안보에 대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며 예시로 한국을 들어 “한국은 15%의 관세와 함께 미국 자동차 표준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지렛대로 끌어낸 투자 협약에 대해 “유럽연합의 경우 6000억 달러, 한국의 경우 3500억 달러 등 미국의 생산 능력에 대한 상당한 투자 약속이 포함돼있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재건한 마셜 플랜의 인플레이션 조정 가치보다 10배나 큰 이러한 투자는 미국의 재산업화를 가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한국은 비시장 경쟁에 직면해 위축된 미국 조선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며 “이러한 유형의 투자는 미국 에너지, 농업, 방위 및 산업 제품의 누적 약 1조 달러를 차지하는 구매 약정 외에도 이뤄진다. 미국 상품에 대한 이러한 수요와 자본에 대한 준비된 접근성은 미국 제조업체들이 우리가 뒤처져 있던 전략적 부문 전반에 걸쳐 리더십을 재확인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선전했다. 한국 또한 협상 내용에 대해 미국 행정부와 말이 갈라지는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인 가운데 이처럼 큰 규모의 투자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무역질서 회복할 길 요원할 것” 글로벌 무역 전문가이자 WTO 사무차장을 역임한 앨런 울프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그리어 대표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라며 이제 ‘트럼프 라운드’ 이전의 무역질서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세계무역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했다기보다는 미국이 세계무역에서 리더십을 상실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미국이 만든 것은 새로운 세계 무역 질서가 아니다”라며 “세계 무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분의 1 미만이고, 미국은 투자를 포함하기도 하며 항상 상대방의 무역 양보를 포함하는 새로운 요구 사항만 의무화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 입장에서는 관세 인상만으로 파생되는 연간 3000억 달러의 새로운 추가 수입원을 포기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이전의 개방적인 무역 시스템으로 완전히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또한, 국내 산업에 대한 보호 강화는 그 옹호자들을 양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다소 높아질 것이고 세계 성장은 다소, 미국 성장은 더욱 둔화될 것이며 세계 무역에서 미국의 비중은 다소 감소할 것”이라면서도 “미국은 비교적 부유한 국가의 매우 크고 매력적인 시장으로 남을 것이다. 미국의 1인당 가처분소득은 유럽이나 다른 어떤 국가보다 최소 3분의 1 이상 높기에 미국과의 무역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으로는 “미국은 WTO 및 기타 정치경제적 관계와 일반적인 무역 문제에서 리더십을 잃었고 이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2024년과 같은 세계 무역 시스템을 개선하고 유지하기 위해 중견국(EU 포함)이 힘을 모을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미국 리더십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차라리 대안적 새 질서 모색하자” 마이클 프로먼 미국외교협회장은 ‘무역 전쟁 이후 : 규칙 기반 시스템의 폐허에서 규범 만들기(After the Trade War : Remaking Rules From the Ruins of the Rules-Based System)’라는 포린어페어즈 기고문을 통해 세계 무역질서는 이미 복원이 불가능하며 차라리 새로운 질서를 재건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힘의 논리라는 자의적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전염될 위험이 있다”며 “세계에서 가장 큰 두 경제 대국이 규칙 기반 시스템을 벗어나 운영된다면 다른 국가들도 점점 더 같은 행동을 하게 되어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저하되며 전반적인 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를 대체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like-minded) 연합으로 구성된 시스템’을 제안했다. 기존 체제보다는 비효율적이지만, 글로벌 무역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일방주의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규범으로서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체제다. 한편, 프로먼 회장은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트럼프 라운드로 오기까지 세계 무역이 거쳐간 길에 대해서도 회고했다. 금세기 초의 글로벌 무역 시스템은 미국의 주도하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시작돼 다자간 경제 구조의 일환으로 발전돼왔다.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과 같은 기관들과 함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처음으로 수립했다. GATT는 최혜국대우(MFN) 등 일련의 규칙을 제시하고 각국이 시장 개방 약속을 협상하는 과정을 만들었고, 이는 우루과이 라운드를 거쳐 1995년 WTO로 발전했다. 설립 당시 76개 회원국을 보유하고 있었던 WTO는 현재 160개국 이상의 규모로 발전했으며 이는 전 세계 무역의 98%를 차지하는 규모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 당시에만 해도 WTO 체제의 장래는 밝아 보였다. 그러나 지식재산권, 보조금, 국유기업에 대한 WTO 규정은 경제 접근 방식을 예상보다 덜 개혁한 중국과의 통합에 직면한 가운데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됐다. 중국의 경제 전략이 통합과 상호 의존을 촉진하기 위해 설계된 무역 시스템의 무결성에 점점 더 도전하게 되면서, 미국 정계는 이 시스템 자체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했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는 도하 라운드 글로벌 무역협상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해당 합의가 미국과 전 세계를 희생시키면서 중국에 대한 특혜를 초래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집권한 트럼프 행정부는 첫 임기에서 다자 체제에 대한 광범위한 무시를 보였으며,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이 일방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WTO 이전 시기로 돌아가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 결국, 이는 ‘트럼프 라운드’로 이어지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