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30년 전 사건을 빌미로 쿠바 혁명 영웅 중 한 명인 라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에 대한 형사 기소를 추진하고 있다. 쿠바가 심각한 에너지 부족으로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쿠바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미국 CBS뉴스는 15일(현지시간) 미 법무부가 1996년 발생한 항공기 격추 사건과 관련해 피텔 카스트로의 동생이자 쿠바의 전 국가원수인 라울 카스트로(94)를 기소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사안은 대배심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르면 다음주 중 기소 여부가 결정된다.
언급된 사건은 1996년 쿠바군이 쿠바계 미국인 망명 단체인 '구원의 형제들' 소속 항공기 2대를 격추한 일을 가리킨다. 당시 공격으로 4명이 사망했으며, 그 중 3명은 미국 시민이었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쿠바계 미국인 공화당 의원들이 지난해부터 카스트로에 대한 기소를 요구해 왔는데, 이들은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카스트로가 국제 공역에서 비행기 격추를 명령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사건을 검토 중인 플로리다 남부지검의 일부 검사들은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의 혁명 영웅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인 카스트로 전 의장은 2021년 쿠바 공산당 대표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긴 했으나 여전히 쿠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형에게 체 게바라를 소개한 장본인이며 그들과 쿠바 혁명을 함께 주도한 사람이기도 하다. 2008년 형의 뒤를 이어 국가원수 지위인 국가평의회 자리에 올라 2018년 물러났으며, 이후로도 공산당 제1비서로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기습해 미국으로 압송할 때 2020년 미국 연방 검찰이 그를 마약 밀매 및 돈세탁 등의 혐의로 기소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이에 따라 이번 카스트로 기소 역시 미국의 대(對)쿠바 군사작전을 암시하는 경고로 여겨진다.
미 뉴욕타임스는 "94세 쿠바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 가능성 뒤에 숨겨진 암묵적인 경고는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다"면서 "쿠바 정부 관리라면 누구나 트럼프 행정부가 1월 마두로를 체포하기 위해 카라카스를 급습하는 명분으로 그를 상대로 한 연방 기소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이란 전쟁 때문에 다수의 미 특수부대가 중동에 배치된 상태라는 점을 들어 "미군이 쿠바에서도 유사한 작전을 계획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장 작전이 실행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번 기소 계획은 미국이 쿠바 정부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년간 쿠바가 석유를 수입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했고, 이에 쿠바 현지에서는 현재 심각한 에너지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유엔이 "인도적 위기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할 정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정전은 끝이 보이지 않고, 물은 하루 한 시간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아바나 거주 한 경비원의 말을 전했다.
다만 미국은 최근 극한 압박뿐 아니라 협상 가능성도 열어두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존 랫클리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14일 카스트로 차남과 회동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했다. CBS에 따르면 그 메시지는 "미국은 경제 및 안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으나 이는 쿠바가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경우에만 해당한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들어 "쿠바를 우호적으로 인수할 수 있다"거나 "쿠바를 도울 의사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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