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보다 이념'을 내세우며 통합과 협력을 강조하던 중남미 좌파 정부들이 최근 옛날 동지들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외교적 자율성을 우선순위로 두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집권당 장기 집권 체제의 니카라과와 베네수엘라에 대해 '좌파 이웃'들이 탈(脫)이념적 민주주의 원칙을 내세워 비판에 나서면서, 이른바 '핑크 타이드'로 규정되는 역내 결속의 균열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브라질 외교부는 8일(현지시간) 풀비아 파트리시아 카스트로 브라질 주재 니카라과 대사를 추방하기로 결정했다고 브라질 언론 G1과 니카라과 매체 라프렌사가 보도했다. 이는 니카라과에서 먼저 마나과에 있던 브레누 소자 다코스타 브라질 대사에게 출국할 것을 통보한 것에 대한 "상호주의적 대응"이라고 브라질 정부는 설명했다. 브라질 대사는 이미 니카라과를 떠났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정부는 지난달 19일 있었던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 혁명 45주년 기념식에 브라질 대사가 불참한 것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FSLN은 현재 니카라과 여당이기도 하다. 둘 다 좌파 성향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은 1980년대부터 교류했다고 라프렌사는 전했다. 과거 서로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거나 주요 의제에 대해 논의하는 등 비교적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수년 새 오르테가 정부가 니카라과에서 반정부 운동을 도운 가톨릭 성직자를 투옥하거나 국외로 쫓아낸 것을 두고 룰라 대통령은 비판 수위를 높이는 등 갈등을 노출했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달 브라질리아 주재 외신 기자회견에서 "(가톨릭 성직자 관련) 오르테가에게 전화했는데, 그가 받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니카라과와 함께 중남미에서 오랜 기간 좌파 정부의 역사를 이어가는 베네수엘라 역시 대선 부정 개표 논란 속에 주변 이웃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 정치 이념상 좌파로 분류되는 칠레의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이 전날 "베네수엘라 선거에서 사기가 저질러졌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맹비난한 게 대표적이다. 콜롬비아 역사상 첫 좌파 정부를 출범한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 역시 지난달 31일 엑스(X·옛 트위터)에 "베네수엘라 선거 과정을 둘러싼 심각한 의혹은 베네수엘라 국민을 심각한 폭력의 양극화로 이끌고 국가를 영구적으로 분열시키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투명한 개표 자료 공개를 촉구했다. 중도좌파 성향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다소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면서도 개표 불투명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브라질 룰라 대통령 역시 "결과에 대한 공정한 검증이 필수적"이라고 마두로를 압박했다. 좌파 연대의 분열로 비쳐질 수 있는 이런 상황은 공교롭게도 지도자의 장기 집권과 반미(反美)주의가 두드러진 니카라과와 베네수엘라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985∼1990년 한 차례 정권을 잡았던 니카라과 오르테가 대통령은 2007년 재선 뒤 개헌을 통해 연임 제한을 없애고 계속해서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역시 이번 대선을 발판으로 내년에 다시 취임(임기 6년)하게 되면 18년간 정권을 잡게 된다. 두 대통령은 또 국제질서 역학관계 속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극도로 경계하며 미국을 미주 질서를 위협하는 도전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러시아·중국과 밀착하며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려는 노선을 취한다. 니카라과와 베네수엘라 모두 강력한 내부 통제 시스템과 함께 일정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게 양국 언론 평가여서, 다른 좌파 국가와의 연대 회복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walden@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