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3선 확정 발표 이후 부정선거 논란으로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야권 후보의 승리 입장을 거듭 천명했다. 여기에 그동안 상대적으로 베네수엘라에 우호적 입장을 보여온 중남미 국가들도 투명한 자료 공개를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등 마두로 대통령이 대외적으로도 궁지에 몰리고 있다. '이념적 동지'로 여겨지던 역내 좌파 정부로부터 개표 불공정성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미국 정부에서는 아예 '마두로 패배'를 공언하는 등 안팎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일(현지시간) "지난달 28일 치러지는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에드문도 곤잘레스 후보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며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가 승자"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AFP·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블링컨 장관은 "쏟아지는 증거들을 고려하면 이는 베네수엘라나 미국 모두에 분명한 사실"이라며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 결과 발표는 심각한 결함이 있으며, (결과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고 AFP는 전했다. 앞서 전날 브라이언 니컬스 미 국무부 서반구 담당 차관보도 미주기구(OAS) 회의에서 "곤살레스의 대선 압승을 마두로 대통령이나 국제사회가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베네수엘라 선관위는 대선에서 투표 종료 이후 6시간여만에 마두로 대통령의 당선(3선)을 공식화했지만, 실시간 개표 상황을 공개하지 않고 시민단체의 개표 참관을 차단해 부정 개표 논란을 불러왔다. 이날 현재 공식 웹사이트 역시 접속에 차질을 빚고 있다.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이끄는 민주야권 측은 "곤살레스 후보의 압승을 확인할 수 있다"며 자체적으로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득표율 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있다. 인구 규모나 경제적 영향력 면에서 중남미에서 양대 대국으로 꼽히는 멕시코와 브라질 등 그동안 '이념적 연대'를 표방하던 중남미 주요 좌파 정부도 베네수엘라 정부 당국에 개표 과정 전반의 투명한 공개를 촉구했다. 이날 멕시코 외교부가 공개한 공동 성명문에 따르면 멕시코와 브라질, 콜롬비아 등 3개국은 베네수엘라 선거 당국에 신속한 개표와 투표소별 세분화한 개표 자료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콜롬비아 역시 좌파 지도자가 집권 중이다. 이들 3개국은 "우리 정부는 베네수엘라 개표 과정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결과에 대한 공정한 검증을 통해 국민주권의 기본 원칙이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거 과정에 대한 분쟁은 제도적 채널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며 "우리는 베네수엘라 내 폭력 사태의 확대를 막기 위해 각 주체가 최대한 자제할 것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들 3개국 정상은 평소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역내에서 비교적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이번 대선 이후 불거진 개표 부정 논란에 대해서는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비난의 어조는 삼가면서도 공정·투명 선거 원칙 준수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의 경우엔 "개표 사기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다른 두 나라 정상보다 더 유보적 태도를 취해 왔다. 마두로 대통령 측으로부터 개표 감사 청구서를 접수한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투표 검증 절차를 밟기 위해 내일(2일) 모든 후보가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민주야권 측은 베네수엘라 대법원에 친(親)여당 측 인사가 대거 포진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 대선 참관단을 파견한 미국의 카터센터 역시 "대법원에서 독립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비판적인 견해를 보인 바 있다. 한편, 민주야권의 마차도는 지지자들에게 이번 주말(3일) 거리 집회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AFP는 전했다. 당국의 강력한 대응이 예상되는 가운데 경우에 따라선 유혈 충돌로 비화할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인권단체 포로페날은 이날 오후 4시 기준 11명이 시위 과정에서 숨진 것으로 집계했다. 또 다른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사망자를 2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walden@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