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중산층들이 자국의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늦어지자, 미국에 가서 백신을 맞고 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백신 투어리즘’ 현상은 미국의 까다롭지 않은 예방접종 정책도 부채질하고 있다고 <멕시코 뉴스 데일리>가 17일 보도했다. 백신을 맞으러 멕시코에서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 온 줄리아 레이예스(가명)는 “다른 곳에 가서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건 그냥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이라며 “그들(미국 보건당국)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접종한다’는 게 정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제든 미국에 갈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멕시코인들은 ‘에스앤에스’(SNS)와 입소문으로 미국의 백신접종 관련 최신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고 한다. 어떤 에스앤에스 메시지는 라스베이거스를 시도해 보라고 권고한다. 백신 투어리즘을 오는 멕시코인들에게 공짜 숙박을 제공하는 호텔도 몇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접종 센터에 가서 멕시코 운전면허증만 보여도 된다고 안내하는 메시지도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대학교수는 미국에서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예방접종이 허용되는 때에 맞춰 미국으로 백신 투어리즘을 떠났다. 그는 “나는 백신을 쫓는 탐정이 돼야 했다”며 “멕시코에서 내 연령대의 사람이 백신을 맞으려면 아직 몇 개월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멕시코는 코로나19 예방접종 선도국에 꼽힌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처음으로 접종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1300만회 이상을 접종했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60살 이상 고령층에 대한 접종을 끝마칠 계획이다. 이번 주에는 하루에 기록적인 55만4천회 접종을 하는 등 백신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셀로 에브라르도 외교부 장관은 “백신을 외국에 의존하다 보니 보급 지연 등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반해 미국은 이미 2억회 이상을 접종했고, 모든 주에서 16살 이상이면 누구나 접종하거나 곧 그렇게 할 계획이다. 텍사스 한 주만 해도 멕시코 전체보다 많은 1500만회를 접종했고, 몇몇 곳에서는 공급이 넘쳐 백신이 남아도는 현상도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멕시코인이 백신 투어리즘으로 많이 찾는 텍사스주를 포함한 미국의 20개 주에서는 예방접종에 거주지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보건 싱크탱크인 ‘카이저가족재단’(KFF)이 밝혔다. 그러나 백신 투어리즘이 사회 양극화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한다는 달갑지 않은 시선도 있다. 코로나19로 숨진 열에 여덟은 저소득층인 상황에서 백신 투어리즘은 빈부 격차만 더욱 악화한다는 것이다. 아틀랜틱 카운실의 ‘에이드리엔 아쉬트 라틴아메리카 센터’ 책임자인 제이슨 마르잭은 “엘리트층은 비행기표를 사서 접종하면 되지만, 재택근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일을 쉴 수도 없어 백신이 더 필요한 이들은 오히려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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