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베트남도 그렇고, 콜롬비아와 FTA(자유무역협정) 할 때도 그랬고 계속 속아왔다. 콜롬비아 FTA 체결 당시 정부가 뭐라고 했나.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꽃이 얼마나 들어오겠냐고 했는데, 베트남산 국화 절화 수입량은 60배, 콜롬비아산 장미 수입량은 36배나 늘었다. 꽃 수입이 이렇게 늘어날 것이라고 정부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화훼산업 발전 토론회’에서는 화훼산업의 생산·유통·소비 분야에 걸쳐 다양한 현안들이 논의됐다.
이 중에서도 화훼업계의 최대 현안인 한·에콰도르 SECA(전략적경제협력협정) 체결을 앞두고 여전히 피해 대책이 수립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한 성토가 나왔는데, 종합토론 순서에서 이기성 한국백합생산자중앙연합회장이 토론회에 참석한 정부 관계자를 향해 이같이 일갈하면서 앞선 FTA 추진 과정에서 정부가 화훼 분야에 대한 피해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회장은 “실질적이고 확실한 피해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정부 발표에 믿음이 안 간다. 화훼 농가들은 이제는 더 이상 안 속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3년 10월 정부가 장미 수출강대국인 에콰도르와 SECA 협정문에 가서명하면서 SECA 추진 소식이 알려진 이후 1년이 넘어가도록 피해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모습을 바라보는 생산 농가들의 착잡함이 묻어났다. 지난 1년 동안 화훼 농가들은 경남 산지에서 화원을 갈아엎는 항의 시위를 시작으로, 세종시 정부청사와 국회 앞에서 각각 집회를 여는 등 SECA 체결을 반대하며 피해 대책 마련을 촉구해 왔다.
농가들의 불안감이 상당한 이유는 중국(2015년 6월 서명·2015년 12월 발효)과 베트남(2015년 5월 서명·2015년 12월 발효), 콜롬비아(2013년 2월 서명·2016년 7월 발효) 등과 FTA 체결 당시 화훼분야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 예측과 달리 카네이션·장미(콜롬비아), 국화(베트남·중국) 등이 대량 수입되면서 국내 생산기반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다는 상황 인식에서 비롯된다.
화훼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국화와 카네이션의 수입산 점유율은 모두 90%를 넘는다. 국내 절화류 중 연간 판매액이 가장 큰 품목인 장미 역시 수입산에 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다. 한 예로 장미의 국내 연간 생산량은 1억 송이 정도인데, FTA가 체결된 콜롬비아의 화훼업체 1곳에서 생산하는 연간 물량이 7억 송이에 달할 정도로 가격이나 물량 면에서 경쟁 자체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수입산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콜롬비아 FTA 발효 이후 국내 장미 재배 농가는 500여 이상 농가에서 현재 100여 농가로 줄었는데, 또다른 장미 수출대국인 에콰도르와의 SECA 체결이 현실화된다면 국화, 카네이션에 이어 장미 역시 국내 생산기반이 괴멸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크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피해 영향평가 분석과 피해 대책 수립 및 검증 과정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화훼 농가들은 거듭 촉구했다.
정수영 경기도장미연구회 회장은 “SECA 추진으로 장미 생산 분야의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피해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물론 현재 협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콜롬비아, 베트남과 FTA를 추진했던 것처럼 어영부영 넘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추진 상황을 농가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형석 농림축산식품부 원예경영과 사무관에 따르면 11월 현재 SECA 체결에 따른 피해 영향평가 분석 결과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검토 중으로, 이 결과에 따라 피해 대책 수립에 착수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연내 정식 서명을 추진할 계획이고, 국회 비준 시기는 내년 상반기 정도로 점쳐지고 있다. 이형석 사무관은 “비준 시기에 대해 산업부에서 별도 얘기는 하지 않았고, 내년 상반기쯤으로 예측하는 것”이라며 “농식품부는 영향평가 분석 결과에 따라 피해 대책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고 했다.
정수영 회장은 또 “그간 FTA 추진으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생산기반에 시설자금을 투자한 농가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농가들이 생산한 꽃을 팔아 이득을 보지 못하고 있어 폐업이 많아지고 있다. 영농 자재,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 전기요금 등 에너지 비용도 너무 오르다보니 적자가 점점 쌓이고 시설자금도 다 빚으로 남아 감당이 안 되는 실정”이라며 “이미 체결된 FTA로 인한 피해 상황까지 검토해 피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인수 파주장미연합회 회장도 “꽃 가격이 워낙 안 좋다 보니 자조금을 통해 수급조절 차원에서 장미를 폐기하는데, 일시적으로 꽃 가격이 올라갈 뿐 얼마 지나지 않으면 수입꽃이 그만큼 또 채워지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화훼산업에 대해 아무리 좋은 발전 방향이나 정책을 내놓아도 농가가 없어지면 소용이 없는 것 아니냐. FTA 폐업지원금 강화 등 생산자 입장에서 충분한 피해 및 지원 검토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이형석 사무관은 “피해 영향평가 분석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분석 모형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인데, 앞선 FTA 체결 당시 베트남의 경우 화훼 쪽 피해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콜롬비아도 화훼 수입량이 증가는 하겠지만 증가하는 양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 것 같다”며 “콜롬비아 FTA 발효 이후 8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보면 베트남과 콜롬비아의 화훼 수입량이 급증한 상태로, 당시 정부 예측이 틀렸다는 부분을 잘 알고 있고,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사무관은 “에콰도르 화훼 수입량이 지난해 4.6톤으로 상당히 미미한 양이지만, 지속적으로 수입이 얼마나 늘어날지 장담할 수는 없다”면서 “그렇지만 과거 베트남이나 콜롬비아 사례를 알고 있고, 이 부분을 통해 최악의 상황까지 감안해 화훼 피해 대책을 마련해 나가겠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임호선 더불어민주당(충북 증평·진천·음성)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화훼자조금협의회가 주관했다. 김완순 한국화훼학회 회장(서울시립대 교수)이 발제 및 토론 좌장을 맡아 진행했으며, 서용일 화훼자조금협의회 회장, 유석룡 한국화훼농협 조합장, 최성환 부경원예농협 조합장, 임육택 한국화훼협회장, 김남한 한국절회협회장, 배정구 한국화원협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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